메이플을 시작한지 어느덧 꽤 오래되었는데(게임 자체는 7년, 본캐 기준으로는 6년 3개월)

그동안 여러 패치나 사이트의 폐쇄 등을 거치면서 스샷이나 기억 등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게 아까워서 늦게나마 한번 끄적여 놓아 본다.
패치 날짜들은 기억+예전에 만들었던 일기장(?)에 의존했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이 많고 기억나는대로 업데이트할 예정.

스크린샷을 뒤져보니 남아있는게 꽤 되어서 그것들도 조만간 업로드를 해볼 생각이다.

  
* 2004. 6. 도파 캐릭터 생성


사실 본캐 이전에도 아케니아와 마르디아 쪽에 전사 캐릭을 키웠었다. (오픈베타 시절부터..)
30 정도까지 키웠었는데 그때는 스탯이고 스킬이고 찍는 법을 몰라서 아이언 바디 (..) 같은 괴상한 스킬을 마스터해버리는 등

결국 망한 캐릭이 되어버렸고 (..) 접은뒤 본캐로 전환.
처음에 왜 도끼 전사를 선택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타락파워전사님도 없던 시절 같은데..)
아마 전에 키웠던 전사가 검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도끼를 선택해 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대신 전사를 선택하게 된 에피소드는 남아있기에 옮겨놓아 본다.

 

초보자의 보금자리 메이플 아일랜드를 떠나 처음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리스항구에 도착했을 때
호기심에 멋모르고 '리스항구 중형택시'를 타 버렸다.

(원래 각 마을마다 마을 간 이동을 시켜주는 택시가 있는데 리스항구에는 택시가 없고 한 NPC가 그 역할을 한다.
중형택시는 마을간 이동을 해주지 않고 빅토리아 중앙던전의 '개미굴 광장'이란 곳으로 텔레포트를 시켜주는데

그곳은 레벨 8 초보자가 갔다간 뼈도 못추리는 곳)
호기심에 가득차서 도착한 곳은 웬 어두컴컴한 동굴 속..
게다가 지나가던 버섯에게 한대 치이니 80대 데미지가 뜨는 걸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지만

변변한 장비구도 없고 물약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대로 사망해서 던전 바로 앞인 '슬리피우드' 마을에 도착했지만....
물약을 사려면 '사우나'에 들어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것도 몰랐고 해서

일단 대기 상태로 체력을 회복한 뒤 그 체력으로 밀면서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결론은 당연히 사망 (..) 하고 다시 슬리피우드로 귀환 (......)
나가는 길도 모르겠고 (당시에는 월드맵 모드 중 던전 내 지도가 표시되지 않았다)

주니어 네키부터 뿔버섯까지 온갖 몹들에게 골고루 맞다 보니 금방금방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슬리피우드 근처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여서 도움도 못 구하고..
그렇게 한참을 고생하다가 드디어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 성공..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 사람이 귀환서 하나를 주었다.
그 귀환서가 바로 페리온 귀환서였다. (페리온은 전사로 전직하는 마을)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전사는 체력이 높아서 그냥 몸빵하며 사냥해도 웬만해선 잘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체력이 쥐약인 타 직업들이 아슬아슬하게 사냥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처음 와서 만난 사람은 무려 메이스 (..) 를 든 힘법사였다.

(메이스는 힘제한이 있기 때문에 메이스를 들 수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망한 마법사다)
왜 이걸 기억하냐면 남은 스샷 중 가장 오래된 게 바로 그 힘법사와 함께 찍은 스샷이기 때문 (..) (도파 레벨 8 시절)

 

아무튼 당시엔 친구들도 꽤 많이 하고 해서 딱히 커뮤니티 같은 데 가입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잘 키울 수 있었고

1차 전직(검사)은 레벨 10이 되어야 할 수 있었는데 이미 전사를 키워봤기 때문에 1차까지는 요령 있게 잘 넘어갔다.

 

오픈베타 시절(도파의 경우는 오베 이후 생성한 캐릭터라 상관은 없다)의 자유시장은 상점을 마을에도 개설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사람이 많던 페리온 마을 1채널에 상점이 왕창 몰려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사다리타고도 상점 개설이 가능했다)
덕분에 진짜 자유시장 맵에는 호객꾼만 득실거리게 되자 시장 내에서만 상점을 열수 있게 패치가 되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시장 들어가지 않기 운동(맞나..) 비스무레한걸 벌였던 것 같다. 물론 그런건 아무 효과도 없었고 그대로 패치가 되었지만.
그리고 당시에는 마을별 자유시장만 있었고 지금처럼 어디서 포탈을 타도 한곳으로 모이는 형식이 아니었다.
덕분에 커닝시티 자유시장 같은 곳은 정말 황량했고 (..)

페리온 - 고렙템, 주문서 / 헤네시스 - 저렙템, 잡템 정도로 분포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한곳에 다 섞여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식으로 돌아가던 게 어찌 보면 더 편했었다)

 

도파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2004년 초쯤에는 60제 아이템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호검을 든 50대 전사가 전섭 랭킹 1위였는가 하면 쏜즈(나중엔 그리스, 그륜힐, 이블윙즈 등등) 같은 아이템은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탑랭커의 상징이라 옵이 어떻든 무조건 몇천만 메소에 거래되던 시절.
또 당시에는 지금처럼 삐까번쩍한 캐시 아이템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렙 랭커들은 오히려 거의 캐시템을 쓰지 않고

저렙들만 가끔 캐시를 착용하던 시절. (이때의 고렙 장비템들은 수수해도 나름대로 괜찮았는데 요즘 나온 고렙템들은...

영 멋이 없다. 캐시 장착을 부추기려는 의도였을지도)
호신부적이니 가위니 하는 사기급 아이템은 당연히 아예 없었다.

 

* 2004. 7월초 도파 1차 전직


메이플의 경우 1차 직업까지는 큰 분류로만 나뉘다가 2차 전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특성 있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된다.

특히 검사의 경우 새로 생기는 스킬이라야 파워 스트라이크와 슬래시 블라스트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전직 전이나 후나 사냥할 때 쓰는 스킬은 거의 똑같다 (..)

이때는 주로 페리온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퀘스트를 하거나 와일드보어의 땅에 들락날락거리거나

돼지의 해안가에서 놀다가 가끔 출몰하는 아이언 호그에게 쫓겨다녔던 (..) 기억이 난다.
(명중률이 낮아서 데미지를 아예 못주는데 한번 때리면 계속 따라다니는 데다 데이면 무지하게 아프다)
그래도 이시절 정도의 사냥터라도 20렙까지는 그럭저럭 잘 올라서 금방 올렸다.

 

* 2004. 7월말 도파 20 달성


어느새 렙업이 슬슬 지겨워지는 20렙 달성.
지금이야 커닝시티 파퀘니 뭐니 해서 적자도 없이 폭업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었고

오로지 지하철 B1 구역에 서식하는 버블링이 최고였다 (..) (처음에는 버블링조차도 없었다가 패치된 것)
그때는 B1 구역의 사냥 시간 제한도 없었기 때문에 물약을 한보따리 싸들고 가서

기타창이 방울로 가득찰 때까지 무지하게 잡아댔던 기억이 난다.
(맵이 좁고 일자라 사냥하기도 편한데다 버블링이 당시 비싸게 팔리던 '물고기 작살'과 '전신갑옷 지력 주문서 100%'를 드롭했었다.

전지 100% 두장을 팔아서 순메소 100만을 처음 넘어본 것도 이 시절)

그리고 이때쯤 '메이플월드'에 가입해서 활동했었는데 정보 구하기가 어렵던 당시로서는

정리를 꽤 잘 해놓은 곳이어서 득템이 뜨면 그곳에서 등급을 감정할 수 있어서 편리했던 기억이 난다.
기록에 따르면 그곳에 맨처음 썼던 글제목이 '카이니 하방 10% 줌서 3천메소에 샀는데 잘삼?' 이었다고 한다 (.....)
(당시 시세가 10만메소 정도였으니 대박이었다. 지금은 뭐 몇십만 메소 정도는 물약값에 기별도 안가서 신경도 안쓰지만..)


* 2004. 8. 도파 30 달성, 2차 전직


버블링과 와일드보어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드디어 30업.
메이플월드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2차 전직 시험도 손쉽게 통과하고

드디어 아이디대로 '도끼' 파이터로 전직.... 했건만 정작 도끼는 끼지도 못했다.
미리 사놓았던 9/72/2 당커 (당시로서는 대박옵) 는 35제 도끼였고

그때까지도 (..) 끼고 있던 퓨전 메이스가 30제 도끼보다도 옵이 좋았기 때문.
게다가 다른 장비도 상황은 비슷해서 결국 35가 될 때까지 구질구질한 25셋 대부분을 그대로 입고 있어야 했다 (....)
이때 도파의 목표는 35제 브라운 그레이트 헬름을 한번 장착해 보는 것이었다.

(그땐 이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라기보다 일단 앞도 안보이는 구질구질한 25제 투구를 빨리 벗고 싶었다 (..))

 

월드의 경우, 이때까지만 해도 첫 신대륙인 오르비스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탑랭커들이 빅토리아 중앙던전(신전)에서만 놀았고 심심해서 놀러가면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던 시절.
신전 중앙에서 매우 드물게 출현하던 주니어 발록은 거의 전설적인 존재여서

(오르비스 가는 배가 없었으니 당연히 크림슨 발록도 없었고.. 주니어 발록이 그나마 최고렙 몬스터였다)
덕분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탐험대(?)를 조직해서 발록을 만나러 가곤 했었다.

물론 대부분 5~60렙이라 가던 도중 소떼에게 몰살당하는가 하면 겨우 만난 발록의 손톱질 첫방에 비석 세우는게 대부분이었지만.

 

또 이때까지도 80제 아이템이 없던 시절이라 그리스, 이블윙즈, 골든힌켈, 청갑충 (6~70제템)

등을 들고 있으면 갑부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아마 3차 전직 자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당시 이미 70을 넘어서 남아도는 스킬포인트를

엉뚱한데 찍어버린 유저들이 나중에 3차 생기고 나서 트러블이 좀 생겼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이때쯤 던전 갈림길에 처음 갔을 때 찍어놓은 스샷이 있는데
키 셋팅을 보면 2차 전사 주제에 무려 50메소짜리 빨간 포션(초보자나 쓰는..)을 쓰고 있다.
당시에 얼마나 눈물나게 검소한 생활을 했는지 잘 알려주는 부분 (..)

 

* 2005. 2. 오르비스 패치


드디어 첫 신대륙인 오르비스의 등장.
처음 배가 나왔을 때는 전직 레벨별로 다른 표값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꽤 비싼 값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5만 메소쯤이었나..)
빅토리아에 질렸던 사람들이 죄다 오르비스행 배를 타는 통에 배는 만원이 되기 일쑤였다 (..)

(배 정원 제한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님 말고..)

 

이때의 오르비스는 말그대로 '오르비스' 하나만 나온 것이어서 엘나스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천공도시 하나만 있었고
그나마도 주니어 *** 들 루트와 루나픽시 이상급 몬스터들은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처음엔 자유시장 입구도 없었다. 뭐 어쩌라고..)
덕분에 멋도 모르고 사람들 따라갔던 나는 유일한 몹인 스타픽시에게 한참 발리다가

(원거리 마법공격은 이녀석들이 처음이어서 발컨으로는 제대로 상대할 수가 없었다)
주니어 *** 시리즈가 나오면서 이녀석들만 잡게 된다.
이녀석들은 체력이 약한 데다 경험치도 괜찮아서 여기서 35렙 달성..과 동시에 투구, 방패, 당커 등 대량의 장비 교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35업 이후에도 경험치가 괜찮아서 계속 여기서 노가다를 했다.
물론 주니어 ***의 업그레이드 시리즈는 스타픽시보다도 더 강했기 때문에 가지도 않았다.

 

* 2005. 3. 엘나스 패치


곧 이어 엘나스 패치.
처음 엘나스가 나왔을 때는 20층의 오르비스탑이 아예 없었고 오르비스에서 내려가는 포탈을 타면 곧바로 엘나스 마을이었다.
엘나스에 내려가서 처음 만난 몹이 주니어 예티였는데 힘만 줄창 올렸던 당시 상태로는 한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고 (MISS MISS....)
한대맞으면 160씩 다는 걸 보고 깨끗하게 포기하고 도로 오르비스로 올라오기로 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엘나스에서 잠깐 멍때리고 있던 다음날 패치된게 하필이면 오르비스탑 패치 (....)

엘나스 마법석도 같이 패치되었지만 주문서가 없던 나에게는 그림의 떡.
결국 새로나온 몹과 경치를 감상하면서 20층을 그냥 걸어올라갔다 (..)


오르비스에서 다시 주니어 *** 시리즈만 줄창 잡아대며 결국 40렙까지 업.
(이때부터 40제 도끼인 12/77/4 니암을 썼다. 10% 4장의 지작..

또 이때 불꽃 깃털을 처음 먹고 무지 좋아했었다. 당시 시세가 30만이었던가..)
당시로서는 초고가 퀘스트였던 네펜데스의 꿀(700만메소 정도)-본 헬름 퀘도 이때쯤 생겼던 것 같은데
나는 대박에 별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본 헬름이 그렇게 쓸만한 것도 아니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 이때쯤 부캐였던 갑클(클레릭) 캐릭터를 만들었던 듯하다.
사실 갑클은 원래 창고용으로 만든 캐릭터였다. (실제로 2차 전직하기 전까지 이녀석으로는 줄창 상점만 돌렸다)
하지만 워낙 솔플이 편한(힐만 쓰면 물약이 필요없으므로) 직업 특성 덕분에

도파를 키우다가 슬럼프가 오면 갑클을 올리고 하는 식으로 했다.
(자주 하지는 않아서 갑클이 2차 전직을 한건 좀더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좀 웃긴게 이시절 갑클의 목표는 개미굴에 등장하는 좀비버섯을 힐로 원킬하고 다니는 정도까지 키우는 것이었다. (참 소박하다)

 

초창기의 엘나스는 헥터, 화이트팽이 나오는 맵이 끝이었다.
그러다가 얼음골짜기, 늑대의 영역이 패치되고

(늑대의 영역이 최정상이었을 때 거기까지 올라가서 찍어둔 기념컷이 있었는데... 잃어버린 듯하다)
다시 죽숲, 나중에는 보스몹 자쿰이 패치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쿰 동굴까지 있는 지금의 루트보다도 늑대의 영역 5가 최정상이었던 그때가 왠지 더 인상적이었다는 느낌이다.
(당시에 내가 저렙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화이트팽과 라이칸스로프가 돌아다니는 늑대의 영역 5 맵은 정말 무시무시했었다.

주로 탑랭커들이 여기서 사냥하곤 했다)


또 이때까지만 해도 일명 사다리힐(클레릭이 사다리에 매달려 힐을 시전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맞지 않고 사냥할 수 있어서
용기사뿐 아니라 크루들과도 이곳에서 1:1 파사를 자주 했던 시기였다. (사다리힐은 나중에 패치가 되면서 불가능해졌다)

 

p.s. 플레이포럼 사이트도 이때쯤 가입했던 듯하다.
물론 가입만 해놓고 까먹은지라 활동은 전무..

 

* 2005. 5. 루디브리엄 패치


오르비스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륙인 루디브리엄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오르비스와 달리 배시간이 짧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간 것도 한몫)
이때의 루디브리엄은 초창기 오르비스와 마찬가지로 루디브리엄 마을 하나 위주여서
에오스탑 쪽도 없었고 시간의 갈림길 아래쪽도 없어서 크로노스 시리즈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크로노스의 경우 경험치도 괜찮고 첫 마법사 전용 방패였던 '미스틱 실드'를 드랍했기 때문에
그걸 먹어보려고 또 크로노스 던전에서 죽치고 사냥을 하게 된다.

(결국 몇개 정도 득템해서 한개는 갑클 주고 나머지는 팔아서 물약값에 보탰다)

 

* 2005. 6. 에오스탑 패치


얼마 후 다시 에오스탑 + 밑바닥 지구방위본부의 패치.
에오스탑의 경우 무려 100층 (..) 이라는 경이로운 층수를 자랑했다.
중간중간에 몇십층씩 텔레포트로 이동하는 구간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직접 걸어내려가는 건 꽤나 노가다였다 (..)
게다가 문제는 100층 내내 잡화상점이 없기 때문에 물약 보충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것 (..)

덕분에 한번 사냥하러 들어가려면 물약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가야 했다. (지금은 중간에 자판기가 생겼다)


아무튼 이때는 에오스탑에 출현하던 문어몹이나 블럭골렘(초창기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등을 주로 잡으며 업을 했다.
또 탑을 25층씩 이동할 수 있는 에오스탑 주문서 획득 퀘스트에 날아다니는 헬기 몹들 (이름은 기억이 잘..)

의 잡템이 필요했는데 덕분에 이녀석들 따라다니며 엄청 삽질했던 기억이 난다.
(전사는 원거리 공격이 없어서 직접 따라다녀야 하는데

이녀석들 움직임이 한대 맞기 전까지는 랜덤이라 지멋대로 돌아다닌다. 심지어 아예 저 멀리 날아가 버리기도..)
뭐 정말 초창기에는 에오스탑 마법석조차 없었기 때문에 100층을 걸어올라가야 했지만 (.......)

여기서 제일 기억나는 퀘스트는 역시 북치는 토끼가 주는 북 몇천개를 모아오라던 퀘스트 (...)

(결국 완료를 찍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노가다를 정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지경이다)

 

지구방위본부의 경우 일단 퀘스트는 다 완료했지만
딱히 잘 오르는 곳도 없고 사냥도 별로 재미없는 곳이라(랄까 컨셉이 너무 유치해서..)
그냥 퀘스트만 대충 해결하고 에오스탑으로 돌아와서 사냥을 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빅토리아로 돌아와서 좀비루팡을 잡으러 다니게 된다.
덕분에 100-200-400-800-1000의 압박적 5단 콤보인 로웬 퀘스트도 완료하고 여기서 50까지 업.
물론 보상품은 메이플답게 지금 끼고있는 것만도 못한 투구라 그냥 상점에 적선했다.

 

루디브리엄은 이때까지도 시간의 갈림길 아래쪽과 마을 오른쪽 포탈이 없었고

(아랫마을이 없었으니 당연한 상황) 나중에야 시간의 갈림길이 나오고 파풀라투스가 추가된다.

 

p.s. 한달만에 에오스탑 쪽 퀘스트를 다 끝냈다는 게 좀 말이 안되긴하지만.. 날짜 출처가 워낙 불분명한지라 패스...

 

p.s.2 40렙 중반쯤에 첫 머쉬맘 격파가 있었다.
첫 머쉬맘이 준 득템은 머쉬맘의 포자. (거지였단 소리다)

 

p.s.3 이때까지만 해도 전사의 경우 명중률을 맞추기 위해 매우 높은 덱스가 필요했다.
때문에 지금 도파의 덱인 120도 그때 찍어둔 것.
하지만 빅뱅 패치 이후 덱스는 '전혀'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에 덱스가 100을 넘는 전사도 찾아보기 힘든 지금,

덱 120인 도파는 거의 천연기념물급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
효율성 면으로 보면 한마디로 망한 캐릭터란 소리다.

 

* 2005. 7. 도파 50 달성


좀비루팡에서 드디어 50렙 달성.
50업과 동시에 또 대량의 장비 교체가 이루어졌다.
(투구, 50제 도끼인 9/90/3 라이징, 당시에 거의 처음 나왔던 망토(50제) 등등..)

 

50이 되면서 좀비루팡은 아무래도 업이 좀 느려졌기 때문에 엘나스로 가기로 했다.
마침 당시 엘나스에서 유행하던 자쿰 1단계 파사 덕분에 그나마 가장 즐겁게 업을 하던 시기였다.
1단계가 기억상으론 아마.. 파티원들이 각자 열쇠를 가져와서 파장에게 주고

파장이 상자(?)를 열면 폐귀 5장과 경험치를 주면서 끝나는 형식이었는데
폐귀도 값이 꽤나 나가는데다 경험치도 좋아서 업하기에도 편했고 무엇보다 중간중간에 쉬는 타임이 많기 때문에
파티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여기서 55 정도까지 업. (주로 새벽탐을 뛰었다)


여담으로 자쿰 2단계의 경우는 솔플인데 1단계보다 무지하게 어려운데다
(코스 꼬아서 함정 설치해 놓고 한번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전형적인 메이플식 컨트롤 노가다 퀘스트.
후에 나온 순간이동 버그 유저들은 좌표 이동을 이용해 이 퀘를 순식간에 깨는 걸 무한정 반복해서 업을 하곤 했다)
보상도 변변치 않아서 한번 하고 접었다. 자쿰을 직접 잡는 자쿰 3단계는 물론 넘사벽이었고..
(파풀도 없었으니 자쿰이 최고 보스몹이었던 시절. 인맥의 상징인 자투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당시엔 자투를 착용하고 있다는 건 손에 꼽는 탑랭커이거나 탑랭커의 지인 or 부캐 정도라는 증거였다)

 

55부터는 주로 차가운벌판 맵에서 헥터+화이트팽을 사냥했는데
당시만 해도 헥터 파사가 활성화되어 있던 때라 밤새도록 풀파가 여럿 돌아가서 신나게 헥터떼를 두들겨 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스샷을 보면 헥터 꼬리만 2800개 정도 들고 있는 걸 찍은 스샷이 있다 (..)
어차피 대부분 상점 아저씨나 찰리중사 물물교환 퀘스트에 보탰지만.


또 경험치 두배 이벤트를 가장 자주 참여했던 것도 이때였고,
득템 최고 기록(10분만에 장비템 6개 드랍... 지금이야 한꺼번에 두개씩 나오는 경우도 흔한 지경이지만

당시로서는 대박이었다)을 세워본 것도 이때였다.

 

50대 후반쯤에는 멜러디의 개구리를 모으며 물약값 벌이를 주로 했다.
(개당 3천 정도니 100개면 30만, 벌이로는 이보다 좋은게 없었다)

 

* 2005. 8. 도파 60 달성

 

60대가 되면서 다시 장비템 대량 교체..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이때 처음으로 캐시 장비템을 구입했다는 것.
지금 착용하고 있는 장비템이 그때 산거니 참 오래도 입고 있다 (..) (5년차)
전부터도 캐시 아이템을 써오긴 했지만 세달마다 900원씩 쓰는 상점 아이템 (..) 이 전부여서 거의 안 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캐시를 쓰기 시작..한건 아니고 저옷 사고 또 몇년동안은 상점만 줄창 샀다 (...)
또 이때부터 쓰던게 60제 도끼인 10/99/3 샤이닝이었는데 시장에서 장난치다가 어떤 사기꾼에게 실수로 넘겨버렸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다시 구하긴 했지만)

 

아무튼 60~65렙까지는 좀 방황기(?) 비슷한 시절이어서
밀린 퀘스트도 하러 돌아다니고 못가본곳 탐사도 하면서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다.
이때까지도 파풀이 추가되지 않은 상황이라 최고 보스몹은 여전히 자쿰이었고

대부분의 탑랭커는 자쿰 동굴에서 나오는 파이어독을 사냥하며 업하던 시절이었다.
아시안느님이나 타락파워전사님 등도 그 근방에서 몇번 봤던 것 같다.
(60렙때 타락파워전사님이 같은 도끼전사라며 주신 공 59 버드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론 해킹당하면서 날아갔지만..)

 

이후 그냥저냥 65렙이 되면서 국민 매크로 사냥터(?) 로 자리잡은 죽숲으로 넘어갔다.
(처음엔 그냥 일자맵에 힐까지 통하는 몹이라 당연히 고렙 프리들의 매크로가 엄청났다.
조금 후에는 맵 양끝 구덩이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위쪽 공터로 보내지는 방지용 트랩이 설치되었는데

어떤 매크로는 양끝 구덩이를 인식하고 안 빠지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매크로는 위로 보내져도 다시 사다리타고 내려와서 (......) 사냥을 하는 인공지능을 보여줬다)


아무튼 이때는 정말 3차 전직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엄청난 노가다를 감행했다.
(68~70을 3일만에 찍었다. 물론 경험치량은 지금과 달라서 한시간에 10% 오르면 잘오르는 정도..

그때 노가다하며 모은 좀비이빨만 해도 수만개를 헤아릴 듯하다)
이때도 주로 새벽탐(게다가 대부분 솔플)을 뛰었기 때문에 졸면서 하는 사냥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여태껏 가장 많이 졸면서 했던 시기였을듯)

 

여담으로 이때까지도 메이플의 퀘스트 보상은 정말 빈약했었다.
제인과 마르쉘의 장공, 괘종시계의 무기 랜덤 주문서 퀘스트가 돈 버는 퀘스트의 전부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도끼의 경우 거래 자체가 희귀해서 가격도 검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은 옵의 장비를 맞출 수 있었지만.

 

* 2005. 9. 파풀라투스, 아쿠아리움 패치

 

아마 이때쯤 시간의 갈림길-파풀라투스 패치가 있었을 듯한데 나야 뭐 거기 갈일은 없었고..
(시간의 갈림길의 경우 처음엔 바이킹 쪽 루트만 나왔다가 얼마 후 팬텀워치 쪽 루트와 파풀라투스가 추가되었다)
대신 탑랭커들의 사냥터가 G 팬텀워치 + 기간틱 바이킹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때쯤 아시안느님이 슬슬 접었던 걸로 기억..)
그리고 동시에 82~100의 국민 사냥터인 듀얼 파이렛(듀파)도 생겼다.
(기억이 좀 애매한데 아쿠아리움은 확실히 이 근방이 맞고 파풀라투스는 아마 이것보다 좀 전에 패치가 되었던 것 같다)

 

엘나스의 아래층인 아쿠아리움 사냥터도 이때쯤 패치가 됐는데 몹렙이 낮아서 별 쓸모가 없었다.
나중에 심해+피아누스가 패치되었지만 이번엔 몹렙이 너무 높아서 (..) 마찬가지로 갈일 없었음.
한번 피아누스를 구경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1, 1 스킬을 맞고 즉사 (..) 한 이후로는 다시는 안 갔다.

 

p.s. 당시 듀프 버그가 성행했었다. 무슨 버그냐 하면 맵의 한 좌표에 몹을 전부 끌어당긴 뒤 거기서 계속 싹쓸이를 하는 것.
운영진 측에서는 영구정지를 먹였지만 새벽탐에 좀 돌아다니다 보면

구석의 빨간점 하나와 그리로 끌려가는 몹들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때 성행하던 3대 버그가 아마 듀프, 언랜, 순간이동(?) 정도로 기억하는데
듀프와 순간이동은 위에서 언급했고 언랜은 캐릭터가 영구 무적이 되는 것. 물론 셋다 걸리면 즉시 영정이었다.

 

* 2005. 11. 도파 70 달성, 3차 전직


드디어 70렙 달성과 동시에 빅토리아로 돌아와서 3차 전직을 하고 크루세이더로 전환.
전직하면 주는 1 스킬포인트로 찍은 콤보 어택이 얼마나 좋았던지..
(스킬을 1만 찍어서 5개가 아니라 3개가 돌아갔지만 당시엔 크루 자체가 얼마 없던 시절이라

콤보가 돌아가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고렙의 상징(?)이었다)
70제 도끼인 크르노를 착용할 수 있었지만 답답한 공속도 있고

샤이닝이 더 옵이 좋았기 때문에 결국 80이 될때까지 샤이닝만 착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3차의 기쁨도 잠시, 워낙 엄청난 노가다 끝이라 그런지 엄청난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때까지도 살아있던 메이플월드에 접는다는 글을 올렸던 걸 보면..
(본문은 없어졌고 아마 그 며칠 후 메이플월드 사이트가 문을 닫아 버렸던 걸로 기억)
지금도 아쉬운 게, 마침 그때 메이플월드에서 한창 예전에 올렸던 스샷들을 모으던 중이었는데

몇십장 모으자마자 바로 사이트가 닫혀 버려서 나머지 스샷들은 백업을 못 했고
그나마 모아놓은 스샷들도 하드가 바뀌던 통에 대부분이 날아가 버렸다.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스샷들이었는데 그냥 날려버린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아무튼 콤보 구경하는 재미로 71업을 하고, 밀린 퀘스트를 좀 깨니 72업까지는 했지만 그후로는 사냥할 의욕이 없어져 버려서

(그나마 나은 사냥터는 여전히 죽숲의 좀비였는데... 계속 좀비만 잡다간 내가 좀비가 되버릴것 같았다)
그냥 아무데나 돌아다니며 맵 구경하고 이것저것 하며 보냈다.
그러다 다시 전환점이 된 것이 국민 사냥터인 믹스골렘(믹골) 패치.

 

믹골 사냥터는 빅토리아 던전에 있었는데 층별로 폭젠이 되는데다
경험치도 좋아서 당시로서는 60~80대에게 정말 최고의 파티 사냥터로 꼽혔다.
뭐 당시에는 믹골 지형이 낚시가 가능했던 때라서 타직업(특히 표도...)에게 무지하게 스틸이 들어왔지만
워낙 젠이 잘되고 풀파도 많이 돌아갔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사냥 의욕을 불태웠다.
흑자사냥터였기 때문에 물약값 걱정도 없고 해서 80제 도끼 헬리오스만 보고 달렸다.

 

p.s. 70대 중반쯤에 주니어 발록 처음 격파. 뭘 줬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 2006. 3. 도파 80 달성


드디어 80렙 달성.
패닉과 코마를 같이 찍었기 때문에 콤보 어택은 마스터하지 못했지만

번쩍이는 80제 도끼 헬리오스와 80제 장비템들을 착용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남겨진 기록을 보면 이때 부캐 갑클은 45렙 정도였다는 듯하다.
렙으로 보아선 한창 무한 힐질로 레이스나 쓸고 있었던 시기였을 듯.
(이시기 클레릭에게 레이스가 득실거리는 지하철 B3 구역은 정말 환상의 사냥터다)
또 이때가 플레이포럼 사이트에서 활동을 막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 2006. 4. 도파 82 달성, 듀파 진출


당시에는 82렙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는데 왜냐 하면 듀파 파티에 들어갈 수 있는 최저 렙이 82였기 때문이었다.
(몹렙-5 이상의 레벨이어야 파티에서 경험치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당시 듀파의 몹렙이 87이었다.
지금의 듀파 렙은.... 안드로메다 급으로 높다. 심지어 103 갑클이 들어가도 경험치를 못받는다)

뭐 내 경우 살인적으로 많이 나가는 물약을 댈 자본도 없는데다

인맥도 없어서 결국 82가 되서도 거의 믹골이나 계속 했지만.. (대신 여기서 장공을 꽤 많이 득)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결국 듀파를 제대로 시작한 건 85렙 이후였는데
85렙 달성 자체도 한참 후인데다가 마침 이때부터 학교의 압박 (..) 이 심해져서 제대로 사냥을 하지도 못했다.
덕분에 제대로 오르지도 않는 도파 대신 그동안 손보지 않은 갑클 쪽을 많이 올려놓은 듯.

 

p.s. 이때쯤 크림슨 발록 첫 격파.
물론 당시엔 렙이 낮아서 미스가 떴기 때문에 명중률 알약과 장비 등등을 떡칠하고 겨우 잡았다 (..)

 

* 2006. 9. 갑클 80대

 

2006년 5월 ~ 9월은 이상하게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아마 도파보단 갑클 쪽을 주력으로 올린 듯한데 40대에서 80대로 올렸으니 이쪽도 꽤나 폭업을 하긴 한듯 (..)
(갑클의 경우 파퀘 같은게 많이 생겨서 도파보다는 업이 훨씬 쉬웠다)

도파의 경우 2006. 7. 에 90렙 달성에 성공했다.


또 이때쯤 리프레 패치가 제대로 되서 갑클로 가끔 붉켄이나 로어 파사를 간 것 같은데 리프레 쪽은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붉켄은 투킬인 주제에 객기부리며 노가드하다가 툭하면 렉사하는가 하면(그때는 집컴 사양이 별로 안좋았다)

제자리에서 힐질만 하는 로어 파사는 사냥이라기보다는 거의 수면제 수준이라..)

대신 듀파를 주로 뛰었는데 프리는 파티를 잘 끼워줘서 그런지 업속도는 꽤 빨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모험가 직업들과 그나마 정상적인(?) 파사를 할 수 있었다.

뭐 프리가 붙을게 용기사/닼나밖에 더 있었겠냐만은.

 

리프레 패치 조금 후에 나온게 보스몹 혼테일. (2006. 9.)
당시엔 난이도가 워낙 안드로메다 급이어서(유혹에 1,1 스킬에... 정말 별거 다쓴다. 요샌 그나마 공략법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본체가 나오자마자 10초 이내에 파티가 전멸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는 듯)
서버내 탑랭커 30명(풀파)이 들어갔는데도 전멸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전섭 1위 타락파워전사님은 이미 만렙을 찍은 상황)
뭐 내가 잠수한 사이에 어찌저찌 패치가 되었는지 요즘은 혼테일이 잡혔다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격파가 될때마다 서버 내에 공지사항 식으로 문구가 뜬다)

 

* 그 후


이 이후는 남아있는 기록이 플레이포럼에 올렸던 짤막한 글 몇개밖에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헬게이트 (..) 인 고3 시절이어서 거의 하지도 못했다.
기껏 한 건 주말마다 독서실 가면서 꾸준히 상점이나 열어놓고 가거나(사냥을 못하니 팔것도 없었지만)

공휴일에 시간이 날때 가끔 갑클만 슬슬 렙업이나 좀 해준 정도.
(1업당 수백만 메소 정도로 물약값이 무지하게 드는 도파는 도무지 사냥할 수가 없어서 그나마 물약이 안드는 갑클로 사냥)


아마 접기전 레벨이 도파 91(아마 클로니안 엑스에 만족하고 이쯤에서 그만둔 것 같다), 갑클 90 정도로 기억한다.
(이때쯤부터 슬슬 특성 없는 맵, 밸런스 엉망 패치에 

기존 모험가 직업군 열받게 하는 신직업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이니 차라리 접었던 게 나았을지도..)
게다가 엎친데덮친격(?)으로 2007.6.에 동방까지 시작하면서 정말 한동안 메이플은 잊다시피하고 지냈다.

 

그러다 2009년 말에 생각이 나서 재접한 나를 반겨준건 속옷차림 캐릭터들 (.....) (해킹)
당시에 날아간 게 5억 메소 정도일 듯한데 사실 돈보다도 그동안 모아놓았던 희귀템들이 날아간게 더 뼈아팠다.
하지만 이미 날아간 걸 복구할 방법도 없었고, 템이 남아있다고 해서 사냥을 할 상황도 아니고 해서

결국 그냥 해탈하고 (....) 이전보다 더 심한 잠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상 접음)
때문에 이 이후로 패치된 맵이나 직업, 보스몹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는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마가티아 쪽은 최근에 워낙 질리게 했으니 그럭저럭 알게 되었지만)

어차피 넥슨 패치에서 신규 유저 끌어모으려고 기존 유저들 물먹이는 일이야 흔한 일이니

이전 캐릭터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신직업이니 뭐니 하는 컨텐츠들에 관심도 없고 휘둘리고 싶지도 않다.

 

* 며칠 전(2010. 8.)


예전 지인분께서 해킹당한걸 알고는 복구를 도와주신다 하셨다.
그래서 오랫만에 돌아와보니 웬걸, 이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빨라진 업속도와

지인분의 지원포격 (..) 에 힘입어 순식간에 두캐릭 모두 세자리렙 달성.
대충 어림잡아 보면 100렙을 찍는데 도파는 6년 3개월, 갑클은 5년 6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의 꽃은 역시 베타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한 듯.

Posted by 투명용가리
,